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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수천안] 더 이상 점잖을 필요는 없다
[천수천안] 더 이상 점잖을 필요는 없다
•자우스님 논설위원·비로자나국제선원 주지
•승인 2017.05.03 13:28
죽음의 순간까지 우리는
존중받아 마땅한 존재다
불자들이 부처님 품에서
임종할 수 있도록
우리 모두가 관심을 가져야 한다
그 모습이 바로 미래의
나의 모습이기 때문이다
불사와 함께 부처님오신날이 가까워지면서 더욱 분주해진 나에게 호스피스협회에서 한 통의 전화가 왔다.
은평구 모 병원에서 호스피스 환자들을 위로해줄 스님의 방문을 기다리고 있다는 것이다.
그동안 봉사를 나가던 병원이 멀어, 가까운 병원의 의뢰가 오면 가겠다고 했더니 연락이 온 것이다.
“제가 요즘 부처님오신날 준비로 바빠요. 그 다음 주에 갈게요” 했다. 잠시 후에 다시 전화가 왔다.
“스님! 그 쪽에서 교회에서는 부활절이라고 북적거리게 다녀갔는데 부처님오신날을 맞아 불교에서는 아무것도 없고,
더욱 오셔야 하는 거 아니냐고 얼굴이라도 잠깐 보여주고 가라고 하네요. 불자들이 많이 기다린다”고 한다.
순간 부끄러웠다. 그렇다. 우리는 부처님오신날을 맞아 자체 행사를 얼마나 멋지게 할까에 집중했지,
진정 소외된 사람들의 마음을 어루만지는 일에는 소홀했던 것이 사실이었다.
정성스러운 마음으로 사중 스님과 연꽃컵등을 함께 만들었다.
부처님오신날은 다가오는데 임종의 시간은 가까워 오고 얼마나 마음이 간절할까? 가슴이 저미어 온다.
먼저 사무실에서 담당자를 만나 설명을 들었다. 17명의 환자 중 개신교 7명, 불교 5명, 가톨릭 2명, 무교 3명이라고 한다.
반면, 호스피스 봉사자는 불교인은 병원이 생긴 이래로 내가 처음이고, 가톨릭은 수녀님이 매주 오고,
개신교는 40명이 넘는 호스피스 봉사자들이 일주일 내내 오전, 오후로 와서 환자들을 위로 해주고 마사지도 해주니
무교인 사람들 대부분이 고마워서 개신교 세례를 받고 있는 것이 현실이라고 한다.
한숨이 나온다. 열심히 하는 개신교인들을 여기서도 부러워해야 하는 불교의 현실에 마음이 씁쓸했다.
연꽃등을 들고 첫 번째 불자 환자의 병실 문을 열었다. 간암으로 고통스러워 하는 70세의 거사님이 연꽃등을 든 나를 보자마자
활짝 웃는다. 삶과 죽음이 얼마나 연결돼 있는지와 죽음이라는 것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를 설명하고 아미타불을
노래로 조용히 불러드렸다. 합장을 할 수 있으면 하라고 했으나 그는 손을 모을 힘이 없다.
수계식을 해드리겠다고 하니 좋아 하신다. 오계를 하나씩 읽으며 참회진언을 따라 하라고 했으나 그에게는 따라할 힘이 없다.
하지만 고요히 눈을 감고 계셔 주무시나 했더니 다시 눈을 뜬다. 마음속으로 따라하고 있었던 것이다.
기도가 끝나자 나지막한 소리로 “감사합니다”하고 미소 짓는다.
또 다른 불자 환자를 만나 위로하고 지극히 기도했으나 딸이 나와서 자신이 개신교라 어머니를 전도하고 있는 중이니
다시 오지 말라고 한다. 나약해진 몸과 희미한 정신 앞에 평생을 지켜온 종교를 바꾸길 강요하는 딸.
뭐 이런 세상이 있는가? 불자들이 안쓰럽다. 불교의 품이 워낙 커서 가족 중 누군가 타종교를 믿더라도 존중해 주었는데.
평소에 가족과 종교가 다르다면 소신껏 분명히 말할 줄 알아야 한다.
본인의 종교를 존중해 주고 장례절차도 종교에 맞게 해달라고. 더 이상 점잖을 필요는 없다.
죽음의 순간까지 우리는 존중받아 마땅한 존재들이다. 불자들이 부처님 품에서 임종할 수 있도록 우리 모두가 관심을 가져야 한다.
그 모습이 바로 미래의 나의 모습이기 때문이다. 분명 불교에도 호스피스 교육을 받은 사람들이 많이 있다고 알고 있다.
다만, 적재적소에 배치시켜 봉사의 기회를 주는 시스템이 너무 부족하다. 사랑하는 불자들이 따뜻하고 행복하게
다음 생을 맞이할 수 있도록 스님들이 부단히 노력할 때, 부처님께서 이 땅에 오신 뜻은 더욱 빛나게 될 것이다.
[불교신문3296호/2017년5월6일자]
자우스님 논설위원·비로자나국제선원 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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