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이 힘들어 할 때 위로가 되고

갈림길에선 작은 빛이라도 비춰주는

그런 스님이라면 족하지 않겠는가…  

스님은 늘 마음이 고요할 것이라 생각하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 그렇지 않다. 스님도 마음이 흔들릴 때가 있다. 특히 나는 포교를 시작한 후 하안거, 동안거 때만 되면 산으로 돌아가고픈 간절함으로 마음이 흔들렸다. 출가할 때만 해도 참선정진하고 생사해탈해 한 도량의 조실이 되는 것이 나의 목표였다. 그래서 동학사 승가대학을 졸업하자마자 선방으로 달려가 참선수행을 시작했다. 지금 생각해도 너무도 아름다운 시간들이다.
언제나 고요함이 흐르는 선방, 허리를 꼿꼿이 세우고 용맹정진하던 시간들, 화두와 씨름을 하고 만나는 새벽공기의 신선함, 그곳은 지금도 내 마음의 고향이자 내 힘의 원천이다. 그러나 지금은 무악재 3번 출구 언덕 도로가 3층 빌딩 속 포교당에서 밤낮으로 울리는 앰뷸런스 소리, 수시로 찾아오는 방문객 그리고 문 열기가 두려운 매연과 함께 하고 있다. 나는 그렇게 서울 한복판에 있다.
어쩌다 도반이나 사형님들이 와서 하룻밤이라도 자면 한결같이 “자우스님! 이런 곳에서 어떻게 살아?” 한다. 나는 왜 이런 곳에 살고 있을까? 남들처럼 물 좋고 공기 좋은 산속에서 빳빳한 풀 옷 입고 품위 있게 외호 받으며 참선수행만 할 수 있는데 말이다. 밤새 들리는 차 소리로 잠을 설치는 날은 당장이라도 포교고 뭐고 그만두고 산으로 돌아가고 싶은 맘이 굴뚝같았다.
그러던 어느 날, 도심 포교에 지친 나의 마음을 아셨는지 은사 스님께서 전화를 주셨다. 해제철을 맞아 선문회 주최로 불영사에서 큰스님 법문이 있으니 올 수 있으면 오라는 말씀이었다. 늘 산속수행이 그리웠던 나는 부푼 마음으로 걸망을 챙겼다. 어느새 불영사에는 많은 스님들이 모였고 여기저기 반가운 얼굴들이 눈에 들어온다. 대부분 한철 결제를 성공적으로 마친 수좌들이다. 오랜만에 법문을 들으니 더욱 화두참선에 몰두하고픈 생각이 든다. 아침공양을 마친 후 도반 스님들과 포행을 나갔다. 오랜만에 가져보는 여유, 푸른 숲 속 길을 따라 펼쳐진 계곡은 맑고도 신선하다. 바위 위에 걸터앉아 스스로에게 물어 본다. ‘다시 산으로 돌아오고 싶은가?’ 조용히 내면의 소리에 귀 기울여 본다. 그 때 의외의 답이 들려왔다. ‘그럼, 사람들은 어쩌지? 삶에 지쳐 어디로 가야하는지 몰라하는 이들은 어쩌지? 나 혼자 이렇게 좋은 곳에 있으면 너무 미안하잖아.’
가슴이 뻑뻑하고 아리다. 깊은 마음의 소리는 분명히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그래 조금이라도 젊었을 때 사람들과 함께 하자. 대단한 것을 못하더라고 사람들이 힘들 때 조금은 위로가 되는 스님, 인생의 갈림길에서 괴로워 할 때 작은 빛이라도 비추어 줄 수 있는 그런 스님이면 족하지 않겠는가?’
이렇게 다짐하는 순간, 내 마음 등불의 불꽃은 더욱 힘차게 타오르고 있었다. 나는 그 후로 다시 갈등하지 않았다. 적어도 내가 지금 있어야 할 자리는 바로 여기. 사람들과 함께. 세상을 향한 연민과 사랑으로 나의 마음이 오롯할 때 나는 따뜻하고 기특한 미소로 나를 바라보시는 부처님을 만난다.


[불교신문3190호/2016년4월2일자]